[리서치] 2023/2024년 일본의 웹3 동향
일본의 웹3 시장은 꾸준히 완화되는 규제와 글로벌 시장의 호조가 더해져 2024년에도 그 모멘텀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들어가며
지난해 작성한 “2022년 일본의 웹3 동향”에서는 남들보다 유난히 긴 겨울을 거친 일본의 웹3 시장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를 살펴봤다. 구체적으로는 1) 글로벌 마켓과의 괴리가 어부지리로 작용한 점, 2) 규제를 통해 리스크 관리에 성공한 점, 3) 정부가 친Web3 정책기조를 설정한 점, 4) 산업 저변 확장으로 IP 활용성이 증대된 점, 5) 업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한 점을 꼽았다.
2023년 일본의 웹3 시장은 계속되는 정부의 지원과 시장의 회복에 힘입어 여러 가시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2022년이 웹3의 원년이었다면, 2023년은 성장의 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다음 세가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느리지만 예측 가능한 규제의 변화
대기업의 시장 진입 본격화
쏟아지는 해외로부터의 러브콜
1) 느리지만 예측 가능한 규제의 변화
2017년, 전세계 최초로 암호화폐 거래소 라이선스를 도입한 일본은 이후 6년 간 관련 규제를 꾸준히 정비해왔다. 2020년까지는 규제를 새롭게 도입했고, 2020~2023년 사이에는 규제를 유지했으며, 2023년부터는 규제를 완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키시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 키시다 총리는 올 여름 일본에서 열린 업계 컨퍼런스인 “IVS 2023 Kyoto”와 “WebX 2023”에 영상 축전을 보내 격려의 메세지를 전한 바 있으며, 경제산업성 산하에 설치된 “Web3.0 정책추진실”에서는 40명의 전담 인원이 웹3 산업의 진흥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으로 치자면 KBW에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고, 산업부 산하에 웹3 전담 조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완화되는 규제들에 대해, 일본 웹3 업계는 협회 등을 통해 오랫동안 내온 목소리가 마침내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반응이다. 1) 스테이블 코인을 합법적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제 프레임워크가 시행된 것, 2) 이른바 “와타나베 소타 문제(Astar의 창업자 와타나베 소타 대표가 세금 문제로 인해 일본에서 토큰을 발행할 수 없어 일본을 떠나 사업을 해야 했던 문제를 일컫는다)”라고 불리는, 자사 발행 토큰의 기말 평가이익 과세 문제가 해결된 것, 3) 타사 발행 토큰에 대해 처분 제한이 있는 경우 향후 기말 평가이익 과세를 하지 않기로 한 것(2024년), 4) 벤처펀드가 토큰에 직접 투자할 수 있고, 기업이 주식 대신 토큰으로 벤처펀드에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검토하기로 한 것(2024년~)이 전부 올해 시행되었거나 발표된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표에 기재하지는 않았으나, DAO 관련 규제 프레임워크를 세계 최초로 도입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규제 동향의 특징은, 변화의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그 방향이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채굴과 거래를 비롯해 관련된 모든 사업을 하루아침에 금지시킨 중국이나, 개인은 거래가 가능하지만 법인은 거래가 불가능하고, 현물은 거래가 가능하지만 선물은 거래가 불가능한 상황이 (법이 아닌) 실무로 금지된 한국과 달리, 일본의 규제는 명문 규정에 기반하고 있으며, 규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장기간 심의회 및 퍼블릭 코멘트(다양한 이해관계자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를 거치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높다. 혹자는 이러한 일본의 모습이 마치 기차 같다고도 한다. 일단 방향을 정하면, 과속을 할 수는 없지만, 그 방향을 바꾸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레일을 따라 언젠가 목적지에는 반드시 도착한다는 것이다.
다만 갈 길은 멀다. 큰 기대를 모았던 타사 발행 토큰에 대한 기말 평가이익 과세 이연도, 기술적인 처분 제한이 존재하는 경우로 한정되어 반쪽짜리 개혁이라는 평가가 많다. 최종 보스에 해당하는 개인의 분리과세도 아직 변경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확실히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본의 웹3 시장은 아직 긁지 않은 카드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고 하겠다.
2) 대기업의 시장 진입 본격화
올 한해 일본에서는 다수의 대기업이 웹3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거나, 과거보다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업별 활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NTT도코모 (NTT디지털): 일본의 최대 통신사인 NTT도코모는 2022년 11월, 웹3 산업에 앞으로 6년 간 최대 6,000억엔(5.5조원)을 투자할 계획을 밝혀 화제가 됐다. 이후 NTT디지털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엑센츄어를 파트너로 하여 웹3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달에는 Scramberry라는 월렛 서비스의 퍼블릭 베타 버전을 공개했으며, 2024년 2월 정식 런칭을 계획하고 있다.
MUFG (미츠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 일본의 최대 금융그룹인 MUFG는 신탁은행인 MUTB를 통해 개발하던 디지털자산 플랫폼 “Progmat”을 올해 10월, 별도의 주식회사로 출범시키면서, NTT 데이터, 미츠이스미토모 파이낸셜 그룹, 미즈호은행 등을 주주로 참여시켰다. Progmat을 통해 증권형 토큰, 유틸리티 토큰, 스테이블 코인 등을 모두 품겠다는 계획이다.
소니: 전자기업으로 시대를 호령했던 소니는 자회사인 소니 네트워크 커뮤니테이션즈를 통해 Astar의 와타나베 소타가 이끄는 스타테일 랩스(Startale Labs)와 블록체인을 개발을 위한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기로 발표했다. 플레이스테이션, 소니픽쳐스, 소니뮤직 등 웹3와 상성이 좋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소니는 수면 아래에서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BI: 일본 웹3 시장에서 가장 공격적인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 SBI는 현재까지 “암호자산교환업” 라이센스를 자체 취득(SBI VC Trade)하고 거래소 3개사를 인수합병(Taotao, FXCoin, Bitpoint Japan)했으며, 리플과 함께 SBI Ripple Asia 설립(2016년), 유동성 공급자 B2C2 인수(2020년), NFT 마켓플레이스 개발 스타트업 인수(2021년)후 SBI NFT로 운영 등 업계 선구자로서 화려한 이력을 갖추고 있다. SBI는 11월, 스탠다드차타드와 함께 UAE에 1억 달러 벤처펀드를 조성할 것을 발표하였으며, 하술할 써클(Circle)과의 협업, 사우디 아람코와의 MOU 체결 등 해외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늘리고 있다.
노무라: 일본의 최대 투자은행인 노무라는 2018년에 하드웨어 월렛 기업인 렛저(Ledger)와 함께 암호화폐 수탁사업을 위해 코마이누(Komainu)라는 회사를 설립한 바 있다. 이후에는 레이저 디지털이라는 자회사를 스위스에 설립하여 암호화폐 자산운용, 트레이딩, 벤처 투자 등의 사업들을 추진해왔다. 레이저 디지털은 올해 10월, 일본 오피스를 오픈하고 활동 범위를 일본 국내로도 확장하고 있다.
후지쯔: 일본의 종합 IT회사인 후지쯔는 올해 2월, 웹3 엑셀러레이션 플랫폼을 런칭하고, 블록체인 및 고성능 컴퓨팅을 위한 API 등 개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크로스보더 거래에서 안전성을 검증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1년간 진행한 바 있다.
ANA(전일본공수): 일본의 항공사 ANA인 올해 5월, 자회사인 ANA NEO를 통해 NFT 마켓플레이스인 GranWhale을 런칭하고 유명 사진작가의 작품을 NFT로 판매한 바 있다.
산리오: 헬로키티의 개발사 산리오는 올해 10월, 웹3 팬 플랫폼을 운영하는 가우디(Gaudiy)와의 협업을 발표하고, 산리오의 IP를 바탕으로 Arbitrum과 GPT-4를 활용한SNS 서비스를 2024년에 런칭하기로 했다.
이러한 대기업들의 도전 중 Product-Market-Fit을 찾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잊혀지는 경우가 상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AI가 긴 시간 끝에 생성형 AI로 대중적인 유스 케이스(Use Case)를 찾았듯이, 여러 방면에서의 도전 없이 웹3의 성공적인 유스 케이스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며, 그러한 관점에서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매스 어답션으로 나아가는 성장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쏟아지는 해외로부터의 러브콜
일본 시장에 새로운 기회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 웹3 업계의 이해관계자들은 올 한해 일본 시장에 엄청난 러브콜을 보내왔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이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으로 많은 관심이 집중된 한해였다고 평가한다.
컨퍼런스: 올해 4월에 개최된 ETH Tokyo는 전년 대비 컨퍼런스 외국인 참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ETH Tokyo에 참가한 외국인들 중 일부는 “일본으로 Relocation해도 좋을 것 같다”라는 말을 반쯤 농담처럼 던지기도 했다. 이러한 관심에 힘입어 각각 6월, 7월에 개최된 IVS와 WebX에는 만 명 단위의 인원이 참가했다.
중국계 창업자들의 Relocation: 이러한 기회를 빠르게 눈치 채고 올해 초부터 일본으로 이주를 시작한 부류가 있으니, 바로 중국계 창업자들이다. 이들은 암호화폐에 적대적인 중국과,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미국, 싱가포르 등을 떠나 일본에 새 둥지를 틀고 있다. 일본의 크립토 커뮤니티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써클: 일본의 B2B 결제 시장은 연간 1경원 규모의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즉, 스테이블 코인의 어답션이 1%만 이루어져도 연간 100조원 규모의 시장이 된다. USDC의 발행사인 써클은 일찍이 일본의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인 JPYC에 투자를 집행한 바 있으며, 올해 11월, SBI와 손을 잡고 USDC를 일본 내에서 유통시기키 위해 협력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Disclaimer: 하이퍼리즘은 JPYC의 투자사이다.)
바이낸스 재팬: 바이낸스는 카카오 픽코마(구 카카오재팬)로부터 픽코마가 인수했었던 SEBC(Sakura Exchange Bitcoin)를 1년 만에 사들여 바이낸스 재팬으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 11월, 정식으로 서비스를 런칭하였으며, 런칭과 동시에 일본 내에서 가장 많은 토큰이 상장(47개)된 거래소라는 타이틀을 확보했다.
해시드: 일부 파트너가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등 일본과 몇 가지 접점을 갖고 있는 해시드는 버츄얼 유튜버 플랫폼인 이즈모(IZUMO)의 $12.7M 규모 시드 라운드를 일본의 VC인 ANRI와 함께 리드했다. 또한 최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에서 주목할 만한 웹3 시장으로 태국, 인도, 중동과 함께 일본을 꼽았다. (Disclaimer: 해시드는 하이퍼리즘의 투자사이다.)
IMX, Sei, Axelar 등 L1: 올해 일본 거래소에 연이어 상장한 IMX와, 메인넷 런칭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Sei는 각각 일본에서 사업개발담당을 채용해 파트너십 구축에 나서고 있다. 크로스체인 커뮤니케이션에 주력하는 Axelar 역시 일본의 여러 플레이어들과 태핑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Disclaimer: 하이퍼리즘은 Sei의 투자사이다.)
지금 이 시점에도 다양한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일본 시장을 태핑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논의가 상당히 진척된 안건들도 많은 만큼, 내년에는 더욱 재밌는 소식들이 발표될 것으로 생각한다.
나가며
일본의 웹3 시장은 꾸준히 완화되는 규제와 글로벌 시장의 호조가 더해져 2024년에도 그 모멘텀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관전 포인트로는 1) 웹3 VC 생태계가 미약한 일본이 규제 완화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2) B2B 시장에서 웹3 어답션이 얼마나 일어날 수 있을 것인지, 3) 로컬한 유스 케이스들이 의도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를 꼽아본다.
끝으로 로컬한 유스 케이스 하나를 언급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일본에는 고향납세라는 제도가 있다. 연중 본인이 거주하지 않는 지자체에 기부금을 내면, 세액 감면과 함께 지자체로부터 최대 기부금 30% 가액에 해당하는 답례품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한국에도 최근 “고향사랑기부금”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되었다). 일본의 고향납세는 연간 10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마찬가지로 1%만 어답션이 이뤄져도 연간 1,000억원의 시장이 된다. 아루야우무(Alyawmu)나 JPYC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이 이 시장을 노리고 있으며, 나가노현 이즈나마치, 홋카이도 쿠시로시 등이 답례품으로 펜션 숙박권과 NFT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희망적인 점은 고향납세 뿐만 아니라 캐릭터 IP 시장 25조원, 경마 시장 30조원 등, 업사이드는 제한되어 있지만 규모가 크고 경쟁은 적은 시장이 일본에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웹3의 어답션이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저자에 대해
이원준 대표는 고등학교 재학 중 처음 창업한 이후로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을 비롯한 다수의 서비스를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2017년부터 도쿄에 거주 중입니다. 일본의 패밀리 오피스에서의 근무를 거쳐 2018년 하이퍼리즘을 창업하였습니다.
주요 경력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Founder (2013~2016)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최우등/조기 졸업 (2016)
서울프라이스 CMO (2016)
ABC Finance Business Development (2017~2018)
하이퍼리즘 Founder & CEO (2018~현재)
와세다대학교대학원 경영관리연구과(MBA) 재학 (2021~현재)
Forbes 30 Under 30 Asia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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